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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빈대의 습격’…왜 유독 프랑스에 확산될까?

by 4545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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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프랑스 일간 르몽드〉


몸 길이 대략 4~7 밀리미터, 납작한 타원형에 적갈색을 띠다 사람의 피를 빨면 빨갛게 변하고, 하룻밤에 90번까지 물어뜯을 수 있는 해충.

'사과 씨보다 작은' 이 빈대 때문에 프랑스가 발칵 뒤집히고 있습니다. 빈대 관련 뉴스가 프랑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도 벌써 몇 주째입니다. '관광 대국이 빈대 천국이 됐다'는 조롱 섞인 트윗에서부터, '빈대 사태가 확대되면서 정치적 갈등까지 촉발시키고 있다'는 영국 가디언 지의 분석도 나왔습니다. 파리 지하철에서, 고속 열차와 공항에서 빈대가 출몰했다는 관광객, 시민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SNS에 번지면서 '충격과 혐오감이 프랑스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고도 가디언 지는 전했습니다. 대체 프랑스에서 빈대가 얼마나 출몰하기에 이 난리인 걸까요?

 

 



■영화관·기숙사·지하철까지…빈대 출몰…

 

빈대의 습격은 이미 한 달여 전, 프랑스인들의 긴 여름 바캉스가 끝날 무렵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9월 초 프랑스 대형 극장 체인인 MK2와 UGC 의 파리 여러 지점에서 빈대를 봤다거나, 빈대에 물렸다는 사람들의 사진과 증언이 SNS에 퍼지고 해당 극장 홈페이지에 댓글로 달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 극장들은 즉각 "자체 조사 결과 빈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 빈대는 극장의 문제가 아니라 파리 시민의 문제다."라고 반박했습니다.

 

프랑스 기차에서 촬영된 빈대 〈출처 : X (옛 트위터)〉


그러나 학교 기숙사 등 공공장소 곳곳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목격담들이 끊이지 않았고, 지하철과 고속열차에서 촬영했다는 동영상이 SNS에 확산하고 민원이 급증했습니다. 파리 지하철공사와 프랑스 철도공사가 자체조사에 나섰지만, 이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여전히 "빈대가 발견되지 않았다" 입니다. 클레망 본 프랑스 교통장관은 "최근 파리 지하철공사에 접수된 민원 37건을 모두 확인했지만, 빈대가 나온 건 '0'건"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번 주 초, 교실에 출몰한 빈대 때문에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한 중학교에선 급기야 휴교령까지 내려졌는데, 빈대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만 띄고 보건 위생을 책임지는 공무원과 정부 각료들 눈엔 보이지 않는 걸까요?

 



■'한때 박멸' 빈대의 귀환…"3~4년 주기로 급증"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이후 사실상 박멸됐지만, 프랑스에서 빈대의 습격은 수십 년 넘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1948년 강력한 살충제로 쓰인 DDT가 발명된 이후 프랑스에선 1950년대 즈음 빈대가 자취를 감췄다가, 1990년대 들어 다시 출몰하기 시작한 겁니다. 영국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양상인데, 해외 관광이 일반화되면서 세계적으로 관광객의 이동이 잦아진 점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힙니다. 프랑스에선 주로 여름철에 3~4년 주기로 빈대 출몰이 잦아지는 일이 반복돼왔고, 특히 기온이 더 뜨거웠던 여름일수록 빈대가 급증했다고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앵포는 전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도 "기후 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빈대가 더 번식했고, 이는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며 애써 희석하는 모습입니다. 빈대가 급증한 올 여름, 프랑스는 실제로 '역대 4번째로 가장 더운 여름' 을 맞은 것도 사실입니다. 프랑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초 이른 더위와 8월 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올해 6월부터 석 달간 전국 평균 기온이 지난 30년 평균치보다 1.4℃ 더 높았다는 겁니다. 이 여파 때문일까요? 빈대의 출몰 횟수도 가파르게 늘어 2023년 여름, 방역 업체가 빈대 때문에 출동한 건수가 지난해보다 65% 증가했다고 프랑스 일간지 라 리베라시옹은 보도했습니다. 프랑스 방역 업체 노조 CS3D가 추산하는 2019년 빈대 방역 출동 건수는 54만 건, 지난해는 109만 건 (추산 중)에 달하는데, 이대로라면 올해는 이 기록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큽니다.

프랑스 식품환경노동 보건안전청(ANSES)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2017년~2022년) 프랑스 전체 가구의 11%가 빈대 피해를 입었는데, 이런 통계 역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엔 매우 취약합니다. 프랑스 주간지 르 푸앙은 "아파트나 개인 주택은 그나마 피해 집계가 가능하지만 대중교통과 공공장소는 제대로 집계되고 있지 않다" 라고 지적합니다. 또 "빈대 발생에 타격을 입는 주요 분야, 즉 호텔이나 관광업, 운송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의 빈대 확산 통계를 조사 관련 주체가 확보하지 못했고, 이들 산업 종사자들이 문제 제기를 꺼리기 때문에 발생 통계 자체를 집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라고 분석했습니다.

 



■빈대의 습격…왜 유독 프랑스에 확산?


하지만 유독 프랑스에서 빈대의 습격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관광 대국인 프랑스에 코로나 이후 해외 관광객과 국내 여행객들이 늘면서 빈대가 더 많이 유입돼 전파됐을 것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최근 5년 새 프랑스 보건안전청 통계를 봐도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빈대 감염 가구수가 32%로 가장 높았지만, 코로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2022년엔 8%대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살충제에 대한 빈대의 내성이 점점 강해지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프랑스 기생충학자인 모랑 아레즈키 이즈리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살충제를 뿌리면 약한 빈대들은 대부분 죽지만 저항력이 강한 '비정상적인' 빈대만 남게 되고, 이들이 번식과 증식을 계속한다, 현 시점은 이 저항력 강한 빈대가 90%를 차지하는 단계에 다다랐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방역비·사회적 낙인 우려에 '쉬쉬' …중고품 거래도 원인

 

비싼 방역 비용과 사회적 낙인이 우려돼서 빈대가 나와도 쉬쉬하는 경향도 전파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선 빈대가 나올 경우 집주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신고를 꺼린다는 겁니다. 사회적 주택, 즉 저소득층 대상 임대 주택이나 공공주택 임대인이 2021년 빈대 방역비로 낸 돈은 평균 7만 4천 유로, 우리 돈 1억 6백여만 원에 달합니다. 프랑스 전체 가구를 봤을 때 최근 5년 평균 연간 빈대 방역 비용은 무려 2억 3천만 유로 (약 3,269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여기에 중고품 거래가 최근 활성화된 점도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프랑스 보건안전청은 "10여 년 전 프랑스 전체 의류 시장에서 1~2%에 불과했던 중고 의류 거래가 최근엔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며 빈대가 확산되는 데엔 소비 패턴과 소득 수준이 청결도보다 더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빈대가 내 삶을 앗아갔다"…몸과 마음에 후유증


빈대가 전염병을 옮기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입니다. 빈대 때문에, 2019년 프랑스인들이 쓴 치료비 등 보건 비용은 8천3백만 유로(약 1,181억 원)나 되는데, 여기엔 삶의 질 저하, 수면 장애와 정신적 충격 관련 비용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빈대에 물리고 난 뒤 신체적으로는 극심한 간지럼증과 피부 병변의 고통을 겪고, 정신적으로는 수면 장애와 불안, 공포감, 사회적 단절감에 시달리는 셈입니다. 집에서 빈대가 나와 수개월 동안 집 밖을 나서지도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했다거나, 밤마다 잠을 설쳤다는 피해자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빈대가 내 삶을 앗아갔다, 끝없는 악몽이다" 라며 토로하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빈대 들끓는 프랑스, 2024년 올림픽 '위기' 전파의 공포는 해외 언론에 어떻게 퍼지고 있나" :프랑스 앵포 기사 캡쳐〉


 

■파리 올림픽 10달 앞두고… '빈대와의 전쟁'


"사태가 이렇게 번질 때까지 정부는 뭘 했는가?", "빈대 폭증의 책임은 프랑스 정부의 무대응에 있다!" 지난 3일 프랑스 의회에선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빈대 퇴치에 별 효과가 없는 화학 약품은 사용을 중단시키고, 방역비용을 공공서비스 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됐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빈대 문제가 건강과 경제, 교통과 관광에 여파를 미치고 있다"면서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6일 전 부처를 소집해 긴급 대책 회의를 열기로 했는데 과연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내년 파리 올림픽 개막일이 채 10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지만, 전 세계인의 축제를 앞두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없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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